-
영화 <휘트니> 후기: 우리가 사랑했던 그녀의 뒷모습 .카테고리 없음 2020. 6. 7. 02:32
>
여기, 세상을 뒤흔든 두 커플이 있다. 둘 다 각각 한 세기를 대표하는 커플이나, 그 성격은 판이하다. 그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가였고, 피부색도 동일하다. 그들의 이름은 휘트니 휴스턴과 바비 브라운, 비욘세와 제이 지다. 이 둘은 둘 다 남편보다 아내의 인기와 명성이 더 높았다. 그래미 어워드 수상에 빛나는 제이 지 역시 아내 비욘세의 어마어마한 명성을 쫓긴 어려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뉴 잭 스윙의 황태자, 바비 브라운은 음악가라기보단 딴따라에 가까웠다. Every little step, Hummpin around 등 다수의 히트곡이 있었으나 그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동시대 최고의 가수로 불리는 사람을 배우자로 둔 남편들은 아내의 후광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특히 바비 브라운은 아내인 휘트니 휴스턴에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에 늘 휩싸여 있었고, 마약과 폭행 그리고 외도까지 온갖 망나니짓을 일삼았다. 망나니 남편을 둔 아내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천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지상 최고의 가수였지만, 늘 공허하고 고독했다. 그녀는 집에서, 파티장에서, 심지어 공연장 뒷편에서 마리화나와 코카인을 피우며 가슴 한 켠의 공허함을 달랬다. 그렇게 20세기 최고의 명가수라 칭했던 한 가수의 몰락이 시작되고 있었다.
>
영화 <휘트니>는 1990년대 최고의 가수로 평가받은 휘트니 휴스턴에 관한 전기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십대 시절 휘트니 휴스턴이 어떻게 자랐으며, 어떻게 스타가 됐고, 몰락했는지를 나름대로 상세하게 그려낸다. 영화를 보면 우리가 슈퍼스타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타락하기 쉬운 삶을 살고 있으며, 그들이 지닌 부와 명예가 한순간 사라지기 쉬운 거품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허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게 된다.
>
<휘트니>는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죽기 전까지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풀어낸다. 그 와중 그녀의 가족, 지인, 그리고 휘트니의 팬이라면 누구나 미워할 수밖에 없는 바비 브라운까지 등장해 인터뷰를 한다. 감독의 시선은 휘트니 휴스턴의 주변인을 통해 대부분 감춰지고, 휘트니란 인물은 그들의 말과 주관적 평가에 의해 재구성된다. 그럼에도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가족과 남편 그리고 친척 등 그녀의 죽음에 관해 책임을 지려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
육군 군인 출신인 아버지와 최고 스타까진 아니더라도 유명 가수였던 어머니 씨씨 휴스턴 사이 중산층으로 자라난 휘트니 휴스턴은 고생을 모르던 아이였다. 이 작품 역시 휘트니가 어떤 고생과 노력을 통해 그 자리에 올랐는지에 대해선 큰 언급 없이 그녀가 어린 시절 한 클럽에서 어머니 대신 데뷔 무대를 가졌고, 이를 통해 신데렐라처럼 메이저 음반사에 발탁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녀는 항상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을 받진 못했다. 어머니 씨씨 휴스턴은 자신이 못다 한 꿈을 위해 딸을 혹독하게 훈련하고 다그쳤으며, 군 제대 후 연예 기획사를 차린 아버지 존 러셀 휴스턴 주니어는 누구처럼 자식을 돈벌이에만 이용하려 했다. 휘트니 곁에서 매니저 역할을 하기도 했던 두 오빠는 그녀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비판이나 질책은커녕 방관하며 그녀에게 마약을 권하기도 했다.
>
이 영화를 보면 반세기 최고의 가수이자, 슈퍼스타라는 칭호가 얼마나 무색한지 깨닫게 된다. 휘트니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이미지보다 더욱 막장에 가까운 삶을 살았으며,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통해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사람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휘트니는 어쩌면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녀의 죽음에 관해 책임지거나 반성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변명하려는 주변인들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가를 알게 된다.
>
영화 <휘트니>는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적 삶이 위대한가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밖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실제 그녀의 삶은 얼마나 피폐했고 병들었는지 알려주는 영화다. 그 구성이나 진행 방식은 일반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와 별다른 차이가 없으며, 또한 영상미나 작품성 면에서도 썩 빼어난 편도 아니다. 다만 이 영화를 볼 이유가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인간 휘트니 휴스턴의 솔직한 모습과 그 이면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한다. 휘트니는 노래와 파티를 좋아하는 십대 철없는 소녀의 감성에서 한 치도 성장하지 못했고, 그녀의 어머니 씨씨 휴스턴은 그녀에게 두성 쓰는 법과 비브라토를 아름답게 내는 법은 가르쳐줬을지는 몰라도 실패를 어떻게 이겨내는지,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사람과 나쁜 영향을 미칠 사람을 어떻게 가려내고 관리하는 지는 가르쳐주지 못했다. 그러므로 휘트니 휴스턴에 관해 아름다운 모습만 남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굳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전성기 시절, 영화 <보디가드>에서 당당하고 아름답게 등장했던 그녀의 모습을 마음 깊이 간직한 사람에게 굳이 이런 추잡하고 서글픈 이면까지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나 세계적인 가수이기 이전에 인간 휘트니 휴스턴의 진솔한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의 마음 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그것이 충격이든, 감동이든지 말이다.